[중앙일보] 조선궁궐 중 경복궁 화장실만 있었다, X냄새 잡는 고급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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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1-11-16 13:13본문
조선궁궐 중 경복궁 화장실만 있었다, X냄새 잡는 고급기술
조선시대 궁궐의 화장실에서도 냄새가 심했을까? 적어도 경복궁 화장실은 고급 기술로 무장해, 냄새가 덜 났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8일 경복궁 동궁(세자가 거주하는 곳) 남쪽 발굴조사에서 대형 화장실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약 30년 전 시작된 경복궁 발굴조사에서 화장실이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돌로 벽 쌓고, 진흙으로 틈 메운 고급 화장실
이번에 발견된 화장실은 깊이 1.6~1.8m, 성인 키만큼 깊이 땅을 판 뒤 돌로 주변을 쌓고 진흙으로 틈을 메워 오물이 밖으로 새나가는 걸 막았다.
발굴조사를 맡아 진행한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양숙자 연구관은 “그간 다른 궁궐터에서 발견됐던 화장실들은 땅을 파서 길을 만드는 게 고작이었는데, 경복궁 화장실은 주변으로 오염이 안되게 아주 고급 기술을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화장실 안쪽에서 채취한 흙에서는 기생충 알이 매우 높은 밀도로 발견됐지만, 화장실 바깥쪽의 흙에서는 기생충 알이 발견되지 않고 깨끗했다.
'푸세식'이지만, 물 흘려 냄새 줄였다
오물이 쌓이는 곳으로 물이 들어오는 길 한 개, 물이 나가는 길 두 개를 갖췄다. 그런데 물이 나가는 길이 들어오는 길보다 더 위쪽에 위치한다. 강화문화재연구소 오동선 학예연구사는 “상식적으로 물이 들어오는 곳이 더 높아야 할 것 같은데 반대로 돼 있어서, 시뮬레이션까지 돌려보며 화장실이 맞는지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구조는 현재의 정화조 기술과 매우 흡사한 ‘선진 기술’이었다. 물이 오물과 닿으면서 발효를 돕고, 발효가 끝난 뒤 위에 뜨는 찌꺼기와 오염수는 밖으로 빠져나가는 원리다. 바닥에 남는 오물은 한꺼번에 퍼내는, 이른바 '푸세식' 화장실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자문을 맡은 한국생활악취연구소 이장훈 소장은 "하루 150명분의 오물까지 수용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먼저 등장한 현대식 정화시스템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8인용? 10인용? 남녀공용?… 자료가 없다
1868년 경복궁 중건 당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화장실은 길이 10.4m, 폭 1.4m의 긴 직사각형 구조다. 발굴조사단은 2019년 동궁 남편 권역 발굴을 시작해, 지난해 11월 현장에서 형태를 확인한 뒤 올해 3월부터 ‘화장실’로 보고 확인 작업을 끝냈다.
토양 분석에서는 회충·편충 등 기생충 알뿐만 아니라 참외 씨, 가지, 들깨 등 음식물도 발견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안소현 연구원은 "국내 유적에서는 참외 씨가 원래 많이 발견되고, 특히 흙 속에 갇혀 공기가 차단된 환경에서는 더 많이 남아있는 경우도 많다"며 "이번에는 잇꽃(홍화, 염료나 한약재로 쓰임) 등 여러 꽃가루도 검출됐는데, 동궁 내에서 길렀던 식물들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깊은 화장실 시설 위로 나무로 된 건물을 지어, 사람들은 그 안에서 볼일을 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화장실의 생김새나, 남녀 구별 등 세부 정보는 남은 기록이 없다. 강화문화재연구소는 앞서 창덕궁과 창경궁에 남아있는 화장실 모사도를 참고해 가상으로 화장실 건물을 그려보고, 8~10인용이 가장 적절하다고 분석했다.